화요일

너는 늘 내 말을 흘려 듣지만 그건 네 잘못이 아니고 내 잘못도 아니더라. 그저 내가 이미 죽은 자, 아니면 아직 나지 않은 자의 말을 빌리고 있기 때문일 뿐. 그런 식으로 말을 훔치거나 빌려 써야 하는 시대를 탓하고 말면 그만이지 않겠니. 술 마시자.

아아, 또 이렇게 새해를 맞이하다니. 나는 죽기에도 부족한 사람인 모양이다.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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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탁하여 무작정 여행길에 올랐다. 부안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능가산을 찾았다. 능가산은 범어로 신들이 사는 산이라는 뜻이라고, 내소사를 안내하는 처사가 일러주었다. 일주문을 지날 때 팔방에 빼곡한 전나무가 뿜어내는 기운도 좋았거니와, 천왕문 주변 일이백 년 수령의 산왕벚나무들은 정말로 볼만했다. 벚꽃이 아직 피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나무들의 멋드러짐과 별개로 다소 한심한 공공사업의 흔적이 감상을 망쳤다. 도대체 왜 음악이 나오는 스피커를 전나무 숲 곳곳에 설치해두는 것인가? 자연의 소리나 고요가 그런 싸구려 음악보다 천만 배는 낫다. 내소사에 관해서는 설선당과 그 앞에 꽃 피운 산수유나무, 그리고 대웅보전이 아름답다고만 기록해둔다. 나무의 생전 모양새를 그대로 살린 설선당의 곡선 기둥도 기둥이지만, 높낮이 다른 처마의 형세가 운무 자욱한 능가산의 능선을 빼닮아 있어 운격이 있다. 설선당과 대웅보전은 모두 조선 인조 때 지어진 건축물인데, 나무를 하나하나 깎아 만든 꽃 문양 문살과 처마를 받치는 다포 양식의 장식이 미적으로 훌륭하다. 능가산 산자락을 따라 오르다가 길이 미끄러워 관뒀다. 절에서 하루 묵어가기를 청했고, 칠흑 어둠 속에서 범종 소리를 들으며 뒤척이다 깼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싶었으나 지나친 적요가 그러도록 놔두질 않았다.
꿈에서 너는 내게 자꾸 뭔가를 주었다. 짐만 되는 것들을.

 강현아, 네게 살날이 얼마나 남았더냐. 네 살날이 얼마더라도 내 살날에는 한참을 못 미치겠지. 그런데 말이다, 다시 생각해보니 우리 살날이 그다지 차이 나는 것 같지도 않구나.

네 몸 썩고 난 다음에는 무엇이 될 생각이냐, 강현아.

토요일

 관제엽서를 받았으나 물에 젖어 있어, 잉크가 번진 탓에 누가 쓴 것인지,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었다. 읽을 수 있는 부분이라고는 지난날 네가 말했던 피난지 독립문에서 보았던 다시 있다면이 전부였다. 누가 쓴 것일까. 이 알 수 없음에 관해 누구를 탓할 수 있으랴. 하늘이 아흐레가 넘도록 물을 쏟아내고 있는데! 비봉산 자락의 일부도 산붕을 겪은지라 걱정이 없을 수가 없다. 이런 재앙이 무엇에 관한 심판이기는 할 것이다. 다만 신의 심판은 당연히 아니요, 자연도 아닐진대. 청와대에 편지 한 통 써야겠다.

화요일

울면서 너에게 말하고 싶은 밤이다. 우리 모두 조금씩 나쁜 사람들이라고. 인정하고 살아가면 너무 해롭지는 않은 벌레들처럼은 살다 갈 수 있다고. 아직 죽지는 말자. 밥 잘 챙겨 먹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