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 비봉산이 자주 흐리게 보여 날씨나 대기의 질을 의심하기도 하였으나 망가짐을 인정하기 싫은 육신의 자기 속임에 지나지 않는다. 오른쪽 눈에 는개가 끼어 있는 양 흐리고, 자주 눈물이 난다. 이렇게 점점 시력을 잃어가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된다. 나는 시력이 사고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딱히 근거도 없이 생각하는 사람인데, 내 나름대로는 우리의 생각이라는 것은 대부분 문자와 이미지의 입력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라고 가정하고 있다. 즉 시력을 잃으면 생각하는 일로 많은 시간을 보낼 것이라는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시력을 잃으면 생각하는 시간도 점점 줄어들 것이다. 점점 시간을 제대로 감각하지 못하게 될 것이고 생각 또한 세심함을 잃고 뭉툭해져갈 것이다. 복잡한 문장을 읽고 쓸 수 없으므로 생각도 말과 같이 쉽고 단순해질 것이다. 어느 순간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게 될 것이다. 나는 생각하지 못한다는 게 그토록 두려울 수가 없다. 죽음이 두려운 이유는 더는 생각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던가? 그래서 사람들은 세상 어딘가에 생각을 남겨두기 위해 글을 쓰고, 유령이라는 육신도 없는 말과 생각의 전달자를 창조하고… 그러나 딱히 생각이란 걸 하지 않는 인생이면 시력도 크게 상관 없을 것 아닌가. 생각을 말자. 생각을. 쓸데없다. 방바닥에 드러누워 피로한 눈을 감은 채 유리 눈알에 대해 상상한다. 박살난 유리 눈알에 대해. 그 눈알을 투과하는 무채색의 빛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