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책 무덤과 종묘사직

점심 지나 말뚝 도서관 관장 영태 씨와 황차를 한 잔 나누었다. 이태 전쯤만 해도 영태 씨는 평범한 농사꾼이었다. 그새 어떤 막걸리 속에 있던 잘못된 찌끼가 그의 머리를 돌게 하였는지 모르겠지만 어느 날 그는 갑자기 망촌을 위한 도서관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는 지난여름 강수 때 감전으로 폐사한 소들이 살았던 빈 축사를 도서관으로 개조해 말뚝 도서관이라고 칼로 직접 활자를 파낸 널조각까지 달아두었다. (못 쓴 글씨다.) 본디 독서하던 자가 아니었던지라 도서관을 지은 뒤에야 여기저기서 책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사비로 구입하거나 주변에서 기부하거나 주워온 책들 대부분은 물론 있으나마나 읽으나마나 한 것들이었으나 개중에는 아무도 읽으려 하지 않아 촌구석 도서관―또는 책의 무덤에까지 오게 된 값진 책들도 있었으니 그야말로 책의 운명이 기구하였다. 어느덧 사람들이 그를 가리키며 손가락을 뱅뱅 돌리는 사람이 되어버린 영태 씨는 이제 점심때나 해거름부터는 자연스럽게 책을 펼쳐드는 독서가가 되었는데, 아니 그냥 독서가가 아니라 오랜 시간 독서에 매진해온 독서 이론가처럼 보이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제법 책이 많아져 도서관이라고 불러도 무람하지는 않게 된 그의 ‘축사형’ 도서관에는 아직도 꾸준히 책들이 들어오고 있었는데, 그의 ‘중력 이론’에 따르자면 밀린 독서를 하기 위해서는 지금 읽어야 할 책보다 더 많은 책을 구비해두어야 하며, 그 읽지 않은(또한 대부분 읽히지 않을) 책들에 의해 책을 읽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더 강한 중력으로 작용하여 결국에는 책을 펼치게 된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러한 중력의 실험실과도 같은 공간이 바로 도서관이라고 했다. 따라서 읽히지 않을 책일지라도 독서를 위해서는 꾸준히 생산되어야 하고 구매되어야 하거니와, 책에 돈 쓰는 걸 아까워하는 대중들의 심보를 정책적으로 고려하여 국가는 도서관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견해로는 책 읽는 나라가 곧 부강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는 부강한 국가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일평생 피력해왔을 것이 틀림없음에, 왜냐하면 말뚝 도서관을 짓기 이전에는 국민들이 매일 우유 한 잔을 통해 칼슘을 섭취해야 건강해지고 국민 건강이 곧 부강한 국가의 원동력이 된다고 주장했으며, 또 술 마시던 언젠가는 대마의 합법화를 주장하며 대마를 합법화하면 세금도 훨씬 많이 걷힐 것이고 대마가 국민 행복 증진에 즉각 기여할 것이므로 대마 때문에 노동 수준이 떨어질 거라는 우려와는 달리 대마를 살 돈을 벌기 위해 노동을 더 열심히 하여 결과적으로 부강한 국가가 될 것이라는 소리까지 늘어놓았던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하여튼 내가 아는 선에서 영태 씨는 평범한 농사꾼이긴 하였으나 깡촌에서 일평생 보내기에는 아까운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이 자를 통해 환경만이 모든 것을 결정짓는 것은 아니며, 보잘것없는 환경에서도 가끔 돌연변이가 나타난다는 것을 확신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돌연변이의 유무가 아니라 그 사회가 돌연변이를 발견해낼 수 있으며 또한 그 발견된 돌연변이가 결정적인 작용을 할 수 있는 사회이냐는 것일 테고, 환경의 중요성은 이 지점에서 다시 다루어져야 할 것이리라. 어쨌거나 그는 그의 정신이 다른 곳으로 튀기 전까지 한동안은 말뚝 도서관에서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는 영농후계자로 지낼 수 있을 것이다.